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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하는 우리는 늘 가난할까? 칼 마르크스 자본론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

by 돈줄 정대리 2025. 6. 5.

왜 일하는 우리는 늘 가난할까? 칼 마르크스 『자본론』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


“왜 성실하게 일해도 가난한 걸까?”
이 질문, 한 번쯤 해보신 적 있으시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택배 기사, 프리랜서, 사무직 직원…
우리는 땀 흘려 일하지만, 삶은 늘 빠듯합니다.
도대체 문제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이 질문에 150년 전, 한 남자가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가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철학자, 칼 마르크스입니다.

왜 일하는 우리는 가난할까

 

 

자본론은 누가, 왜 썼을까?


칼 마르크스는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 유럽에서
기계처럼 일하다 쓰러지는 노동자들을 보며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일하는 사람들이 더 가난해질까?”

그는 철학자이자 혁명가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절친이자 평생의 후원자인 엥겔스와 함께
자본주의의 구조를 낱낱이 해부해 『자본론』이라는 책을 남깁니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였습니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길을 제시하자.”

 

상품은 왜 '노동의 결정체'인가


『자본론』은 “상품”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상품에는 두 가지 가치가 있다고 했죠.

사용가치: 우리가 쓰는 기능 (예: 컵으로 물을 마신다)

교환가치: 시장에서의 가격

그런데 상품의 진짜 가치는 뭐로 결정될까요?
마르크스는 말합니다.
“상품의 가치는 그 안에 들어간 노동 시간으로 결정된다.”

즉, '모든 가치의 근원은 ‘노동’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정작 노동자는 그 가치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잉여가치, '착취'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마르크스는 이 질문에 대답합니다.
“노동자는 하루 8시간 일하지만, 임금은 4시간 분만받는다.”
나머지 4시간의 가치, 바로 이것이 잉여가치(Surplus Value)입니다.

이 잉여가치는 누구에게 갈까요?
바로 자본가, 즉 사장님 주머니로 들어갑니다.
이 과정을 마르크스는 ‘착취’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자본가는 이윤을 더 얻기 위해

노동 시간을 늘리거나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성을 높여 잉여 시간을 늘립니다 (상대적 잉여가치)

 

기계는 누구를 위한 도구인가


산업화 이후 기계는 노동자를 대체하기 시작했죠.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위해 기계를 들이고,
그 결과 일자리는 줄고, 임금은 낮아집니다.

결국 마르크스는 예견합니다.

“상품은 넘쳐나지만 살 사람이 없는 사회.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위기, ‘공황’이다.”

이런 위기가 반복되면 결국 노동자들은 각성하고,
세상을 바꾸는 혁명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죠.

 

자본론이 남긴 것 : 실패한 예언, 그러나 유효한 경고


물론 마르크스가 예측했던 사회주의 혁명은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20세기 공산주의 국가는 독재와 빈곤으로 무너졌고,
자본주의 국가는 위기를 넘기며 살아남았습니다.

그럼 『자본론』은 틀린 책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가 위기마다 새 옷을 갈아입듯 살아남은 이유,
바로 마르크스가 남긴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 때문이 아닐까요?

 

일상 속에서 마르크스를 떠올리다


요즘도 우리는 마르크스가 묘사한 상황을 만납니다.

배달 앱 노동자들이 ‘플랫폼’이라는 이름 아래 무권리 상태로 일하고

편의점 야간 알바가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며

직장인은 매일 야근하며도 내 집 하나 마련 못하고

이런 현실을 보면,
“정말 자본주의는 완벽한가?” 하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됩니다.

 

마르크스가 던진 가장 따뜻한 질문


『자본론』은 단지 이론서가 아닙니다.
그 뿌리에는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그의 사상이 독한 이유는 단순히 급진적이어서가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당시 누구도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았던 자본주의의 본질을 해부했고,
‘노동자들이 왜 항상 가난한지’, ‘왜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는지’에 대해
차갑고도 날카로운 분석을 쏟아냈습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겉모습이 아닌 뿌리를 보았습니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서 배고픔에 떨던 사람들,
기계보다 못한 대우를 받던 아이들,
월급만으로는 내일이 두려운 노동자의 삶…
이 모든 현실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은 듣기에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은 결국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자본가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그는 불편하리만치 정직했고, 그만큼 ‘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만큼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진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며 : 자본론은 우리 시대의 거울이다


『자본론』은 무너진 체제의 매뉴얼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거울입니다.

지금도 마르크스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왜 우리는 일하는데도 가난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자본론』을 다시 꺼내야 할지도 모릅니다.